저는 여러분과 함께 골로새서 2장 12절로 17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성경을 가지고 오셨으면 골로새서 2장 12절로 17절을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생활에 성장과 승리의 삶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나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가? 이것을 확실하게 깨달을 때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 왔다 갔다 해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와 나의 관계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면 그 신앙은 형식적이지 실제적으로 능력 있게 성장하지를 못합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골로새서 2장 12절로 17절의 말씀은 여러분과 나에게 예수 믿는 이 신앙인 들이 그리스도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12절에 보면 세례의 의미에 관해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과 나를 제일 먼저 이끌어 가는 곳은 바로 골고다의 십자가 밑인 것입니다. 우린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죽임을 받아야 마땅한 인생들인데 성령께서 우릴 이끌어서 골고다 십자가 밑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시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죄없이 태어나시고 이 세상에서 죄를 한번도 지은 적이 없으신 나사렛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이 찢고 피를 흘리면서 거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켜주시는 분명한 말씀은 "저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어린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린 그 십자가 밑에서 마음이 깨어져서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고 자복하고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심으로 말미암아 용서함 받고 구원받은 것을 마음속에 확실히 알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첫발을 딛기 시작했지만은 얼마 있지 아니하여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여러분에게 십자가와 여러분의 관계를 한 단계 더 깊이 깨닫게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나와 상대적으로 저곳에 달려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라 이제 예수님이 내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을 때는 당신의 죄 때문에 당신의 불의나 추악이나 저주나 절망이나 죽음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나를 덮어쓰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덮어쓰고 나를 껴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올라 가셨기 때문에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장례 내 장례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는 저 멀리계신 십자가가 아니라 내안에 있는 십자가 내가 십자가 그 안에 있는 그와 같은 일체를 하나님의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과 내가 예수 믿고 난 다음 물로 세례 받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물세례 받는 이유는 바로 이것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난 다음에 물로 세례 받으러 나오면 혹은 흐르는 시냇물이나 혹은 강이나 바다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교회 같이 세례 통을 준비해놓고 그곳에 여러분이 들어갑니다. 그럼 목사는 여러분에게 신앙고백을 듣고 난 다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 속에 잠기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 속에 잠기어 버린 것입니다. 물이 여러분 위를 덮어버린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내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서 무덤 속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나의 과거의 생애 아담의 자손으로서의 생애는 이제 깨끗이 장사지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목사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물 무덤에서 여러분을 일으켜 세울 때 이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부활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교를 믿었다는 것은 하나의 종교를 믿은 것도 아니고 의식이나 형식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예수가 내안에 내가 예수 안에 우리 하나되어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장례 내 장례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되었다는 이와 같은 현실적인 사항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의 국적이 달라졌다는 것을 압니다. 옛날에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마귀의 나라에 속하였는데 이제 예수 안에서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죽고 장사지내 버리고 다시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 나라에 속하셨으며 우리는 천국 시민권을 가진 천국 인으로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세례를 통해서 또한 우리는 생명의 질이 달라진 것을 압니다. 옛 아담의 삶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서 죽고 부활하고 난 다음 우리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영생을 받았습니다. ***and ***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는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는 프쉬케라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있지만 우리는 죠우에라는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뿐아니라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세상에 살 동안엔 공중엔 권세 잡은 악한 영이 우리들 가운데 와서 역사 했지만은 이제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는 악한 영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우리를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영이 우리를 점령하고 있을 동안에는 우리를 세상풍습과 세상으로 자꾸 끌고갔지만은 우리 속에 성령이 들어오시고 난 다음 성령은 우리들을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천국으로 계속해서 끌고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분이 달라졌었습니다. 옛 아담 속에서 세상에 살 동안엔 우리는 죄의 종이요 마귀의 종이요 사망의 종이었었습니다.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우리가 죽고 장사지낸바 되고 부활했을 때는 이제는 영광스러운 자유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나라를 상속으로 받을 왕자들로서 우리는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과 나의 생애가운데 이와 같이 심심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들 째로 이 성경말씀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 관해서 13절에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예들은 벌써 태어날 때부터 죄중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에게 반역하고 그 영이 죽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죽었다는 것은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교제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눈 시신경이 죽으면 눈이 있지만은 빛에 대한 교제가 없기 때문에 안보입니다. 청신경이 죽은 사람은 고막이 있어도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감각이 죽은 사람은 몸이 다 있어도 바늘로 찔러도 아프지 않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반응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 영혼이 죽으매 하나님과의 반응이 없어지고 말은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해도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난 이유로 인류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나는 것입니다. 아담으로 심었으니 아담의 자손들인 여러분과 나는 운명적으로 뱃속에서부터 벌써 잉태될 때 죄인으로 잉태되고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으며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에 대해서 아무리 말을 해도 그들은 마이동풍이요 벽창호가 된 것은 영이 죽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은 스스로 살아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보고 아무리 일어나라해도 일어납디까? 죽은 사람이 길을 방해하고 있는데 길가에 가로누워 있는데 이 사람아 자동차가 지나간다 일어나라고 고함친다고 해서 일어납디까? 죽은 한 사람은 스스로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죽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살려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선택해서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죄와 허물로 죽어 버렸는데 어떻게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반응을 해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으로 여러분을 깨워 일으켜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 죄를 사하시고 살려주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오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나를 아실까? 하나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실까? 나 같은 사람도 용납하실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어 있다가 이제 예수를 구주로 믿게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은 여러분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살려주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스스로 어머니 배속에서 생성되어 태어날 수 있습디까? 그렇지 않습니다. 부정모혈로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은덕으로 우리는 태어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가 태어난 것은 육적으로나 혈통으로나 사람의 것으로 나지않고 하나님 아버지께로서 났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아신 바 되시고 하나님 사랑하신 바 되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원하신 바 되셔서 하나님이 직접 죽은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죄와 허물을 예수를 통해서 용서하시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려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 아신 바 되었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사랑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과거는 아담의 후예로서 원죄와 자범죄와 하나님께 버림받은 무할례로서 처절한 절망였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영생을 주시고 죄를 사해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이 성경말씀 가만히 보면 우리와 율법의 관계를 이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죄를 짓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난 아담과 그 후예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율법의 심판 하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죄인들은 법의 심판을 받게 돼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죄를 지어도 그 나라와 그 민족 가운데에는 법의 심판을 받거든 우주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반역한 인생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돼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죄를 지은 영혼은 죽으리라고 말했었습니다. 이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의 문제를 어떻게 할까요?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를 살리려고 준 것이 아니라 우리 죄인들을 잡아서 심판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심판이요 칼입니다. 율법으로서 그를 기면 심판의 칼로서 우리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마라, 우상을 섬기지 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말 하지 마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마라고 말했었습니다. 일생을 살면서 율법에 저촉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인간으로선 한사람도 없습니다. 우린 모두다 죄를 지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다 율법의 준엄한 심판 앞에 놓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죄없는 분 한 분이 태어났었습니다. 우리 주 나사렛 예수께서는 남자의 씨를 받아서 태어나지 않았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없이 잉태되었었습니다. 죄없이 태어났었습니다. 원죄 없이 태어난 유일한 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생에 죄를 한번도 짓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능히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갚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어머니가 갑자기 자동차가 달려오면 어린아이를 보호하는데 우리 한국사람이 보호하는 방법하고 서양사람이 보호하는 방법하고는 틀립니다. 한국사람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다가 자동차가 확 다가오면 한국사람은 어린아이를 어떻게 보호하나요? 여러분 어떻게 보호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한국사람은 엉덩이로 보호합니다. 확 돌아서서 엉덩이로 막습니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은 다릅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다 자동차가 확 다가오면은 어린아이를 뒤로 확 돌리고 손으로 막습니다. 앞으로 나가서 여러분 서양과 동양이 그렇게 다릅니다. 서양사람과 동양사람이 서로 만나서 대화를 해도 사상이 잘 통과 안 되는 것은 그만치 문화적인 배경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고가 생기고 문제가 생기면 엉덩이로 막는 민족하고 팔로서 막는 민족하고 생각이 벌써 틀리는 것입니다. 나 여하간 어떻게 되었던 여러분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상처는 부모가 받고 어린아이는 보호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엉덩이로 막건 손으로 막건 막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신 일이 그것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심판의 무서운 칼을 들고 율법의 칼을 들고 인류를 쳐서 멸망시키려 할 때 이것을 우리를 뒤로 제껴놓고손으로 앞으로 막고 우리를 품에 품고 엉덩이로 막으면서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이 우리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막고서 올라가서 그 칼을 대신 받았었습니다. 그 율법의 칼을 예수님이 받아서 몸이 찢어지고 피를 쏟고 예수님은 그 율법의 칼을 꺽어버리고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의 죄에 대한 심판은 예수님이 대신 받음과 동시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율법의 칼을 꺽어버리고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려도 심판할 율법의 칼이 꺽여버리고말은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사람을 심판할 도리가 없습니다. 왜 예수님이 그 율법의 칼을 받아서 꺽어버렸습니다. 이러므로 이 성경은 우리에게 밝히 말씀하기를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이문에선 정서는 율법인 것입니다. 이것을 도말해버리고제하여 버려서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를 율법의 정죄에서 완전히 해방시키고 말은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영원히 죄를 다 용서함 받고 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이제 구원을 얻습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보배로운 피를 인하여 우린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 알아야 될 것은 구원을 받았으면 그 다음 우리들은 이제 율법은 우리를 치는 칼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를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도와주는 거울이 돼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 거울을 안 들여다 본 사람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기의 머리를 만지고 얼굴을 만지고 옷매무새를 만진 것입니다. 우리를 단장하기 위해서 거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서고 주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이제 율법의 거울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심판하는 칼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를 도와주는 거울이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율법의 거울을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여러분과 내가 그 계명을 쫓아 살면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계명을 우리가 지키려고 애를 쓰고 노력할 동안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주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오히려 율법을 사용해서 우리들은 더 나은 신앙생활로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구원을 얻되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 속에 깊이 깊이 들어가고 행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네 번째로 우리와 마귀의 관계를 15절에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정사와 권세란 것은 마귀의 정사와 마귀의 권세를 말합니다. 정사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대통령과 장관들이 모인 그 행정부를 말하는 것이고 권세라는 것은 군대와 경찰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도 마귀의 조직으로서 마귀의 정부가 있고 마귀의 권세로서 마귀 군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마귀의 정부에서 계획을 해서 마귀 군대를 동원해서 온 세계를 하나님 못 믿게 하고 반역하고 지옥에 가게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누가 이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파괴해서 이 어둡고 깜깜하고 절망한 가운데에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그 길이 있을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자기의 영원한 파멸적인 실패인 것입니다. 한국의 법은 한국사람을 다스리지 한국법을 미국까지 가져가서 미국사람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만일 한국법을 가지고서 미국까지 가서 미국사람을 다스리려고 하다가는 미국과 한국은 전쟁이 일어나고 말 것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미국의 주권이 있기 때문에 미국 법이 미국을 다스리지 한국법을 가지고서 미국 사람 다스리지 못합니다. 마귀는 자기의 법으로서 죄지은 아담의 후손들은 다스릴 수 있지만은 예수님은 못 다스립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인 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외국인으로 왔지 세상사람으로 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예수님을 세상법으로 다스려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마귀가 잡아서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아 죽일 수 있지만은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백성이 아닙니다. 세상에 소속한 분이 아닙니다. 하늘나라 백성입니다. 하늘나라에 소속했습니다. 하늘나라에 법이 예수를 다스리지 세상 법이 예수를 다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천국을 전파하매 마귀가 너무 마음에 조바심이 생겨서 앞 뒤 가리지 아니하고 유대인과 로마 사람을 동원시켜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그것 또한 실수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요 하나님의 권세에 대한 도전이요 하나님의 법을 짓밟은 것입니다. 절대로 죄인이 의인을 심판하지 못합니다. 죄의 괴수인 마귀가 의의 본체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괴수인 그가 의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그 우주의 법을 어겼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십자가에서 일어나셔서 마귀를 심판하셨습니다. 마귀는 십자가에서 예수를 못박았기 때문에 그 죄로 말미암아 그의 정사가 다 빼앗기고 그의 권세가 다 빼앗겨 버렸었습니다. 마침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이 패전하고 천왕이 항복선언서를 하고 군대가 자 무장해제 되었듯이 이제 마귀는 그 권세가 다 빼앗기고 마귀의 무장이 해제돼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제는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은 자가 아니라 쫓겨난 새앙쥐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진리를 알면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합니다. 이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마귀를 겁낼 필요없는 것은 마귀는 우는 사자가 아니라 쫓겨난 새앙쥐가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제는 마귀는 다니면서 참소나 하고 거짓말이나 하고 협박이나 하는 이러한 존재지 당당하게 다스릴 권한이 없는 것은 십자가에서 자기 스스로를 박살내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도저히 자기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마귀를 파멸시켜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자기의 권좌에서 쫓겨나고 말은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 실권을 다 잃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은 말씀하기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피하리라고 말씀 하셨으며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마귀는 쫓기고 있습니다. 동에서 쫓기고 서에서 쫓기고 남에서 쫓기고 북에서 쫓깁니다. 우리 주를 믿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피와 그 증거한 말로 마귀를 이겼으니 일어나서 처처에 마귀를 대적해서 쫓아 불 신앙의 유혹을 하지 못하도록 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다섯째로 그림자와 몸의 관계를 성경은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절과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여러분 많은 종교의식들 가운데 보면 대개 종교의식이 먹고 마시고 거룩한 옷을 입고 장엄한 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년 중에 절기를 정해서 특별히 자기들 신 앞에 나가서 신을 섬기고 그리고 월삭에 제사를 드리고 그리고 날짜는 꼭 안식일을 지키라 그래야 구원을 받는다 이런 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 구원이 오기 전에 그림자를 바라보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모두다 의식이나 형식이란 것은 본체가 오기 전에 그것을 가르켜주기위한 하나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본체가 오면은 그림자가 필요없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자 우리 사랑하는 분이 비행기를 타고 옵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기 때문에 그가 비행기 안에 내리기 전에 플랭카드를 환영이라고 해서 크게 붙여놓고 그 다음 악대가 나와서 막 노래를 부르고 손에 손에 국기를 들고서 흔들고 그리고 사람들마다 꽃다발을 들고 기다립니다. 전부 그림잡니다. 그분 오기를 환영합니다. 그래서 비행기가 화 하늘에서 내려오면 비행기를 보고 박수를 칩니다. 그림자를 보고 박수치는 거예요. 그러다가 한참만에 비행기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척척척 걸어나오면 그 다음 가서 그 사랑하는 사람을 얼싸안고 맞이하면 그 다음에는 플랭카드도 소용없고 악대도 소용없고 꽃다발도 소용없고 누가 소용 있습니까? 비행기에서 나온 그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람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면 이제는 비행기 소용없습니다. 근데 아 여보 여보 가지 마시오. 비행기가 저기 있소 비행기보고 손바닥쳐. 플랭카드보고 손바닥쳐. 어 꽃다발보고 손바닥쳐. 왜 가냐? 이 사람아 그건 옛날에 한 것이야. 이 사람이 오기 전에 꽃다발도 필요했고 플랭카드도 필요했고 비행기도 필요했지만 이제 본인이 왔는데 뭐 비행기야 굿바이 플랭카드 굿바이 꽃다발 굿바이 나는 본인이 왔으니 본인하고 간다. 그건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 오시기 전에 예수님 오실 그림자로서 그저 먹고 마시고 또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을 지켰는데 이제 그 본체인 예수님이 척 우리에게 와서 내가 여기 왔다 했으니 아 그 예수님 맞이했으니 이제 뭘 먹고 마시고 절기니 월삭이니 안식일이니 그런 것 알 필요없어요. 그림자 따라서 살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림자를 따라 살고 본체를 버린 사람은 바보인 것입니다. 본인이 왔는데 내가 여기 왔다 응 나하고 같이 가자 아니요 나는 그림자가 좋아요 나는 그림자하고 같이 살래요. 그림자 따라 댕깁니다. 이것은 신앙이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어떤 교파에서는 제칠일날을 지키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토요일날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토요일날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 교파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교파 사람들도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를 믿습니다만 그러나 꼭 토요일날 예배를 봐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성경을 잘못 알아서 스스로의 종교적인 멍에를 목에 걸머진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 토요일이든 주일이든 내가 일주일에 하루만 주님을 사랑해서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그날이 내가 토요일이 좋으면 토요일을 지키고 주일이 좋으면 주일을 지키고 혹은 주일이 아니어서 월요일날이 좋으면 월요일날을 지켜도 일주일에 하루 내어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면 그로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는 예수그리스도를 어떻게 잘 섬기고 예수를 잘 모시느냐 여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날짜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음식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의복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형식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예수님께 달려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예수, 예수님만이 우리의 생명인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사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어떠한 처지나 형편에 있더라도 예수를 놓치지만 아니하면 여러분은 하늘나라 백성으로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간 희망찬 미래를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예수를 구주로 모셨다는 이 사실은 여러분과 나의 운명에 심각한 변화를 가져오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더 이상 이제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우린 하늘나라 사람인 것입니다. 마귀의 백성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더 이상 죽을 사람이 아닙니다. 우린 영생을 얻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더 이상 종살이하지 않습니다. 마귀의 종, 죄의 종, 죽음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자유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를 상속으로 받을 자로서의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이제는 여러분과 나는 율법과의 관계도 명석하게 그 위치를 압니다. 옛날엔 율법을 심판하면서 몸을 움추리고 갈 바를 모르고 두려워 했지만은 이제는 율법은 예수께서 그 칼을 받아서 우리 대신 심판을 다 받고 그 칼을 꺽어버리고말은 것입니다. 그 율법을 도말시켜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 받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믿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심판 받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 사람답게 그 율법의 칼은 거울로 변해서 우리가 매일 십계명을 바라보고 거울에 비춰서 우리 자신을 단장하여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려고 애쓰는 그러한 글에 불과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와 마귀와의 관계도 이제는 선명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엔 마귀를 두려워하고 귀신을 두려워했으나 이이상더 마귀도 겁나지 아니하고 귀신도 두렵지 안습니다. 마귀와 귀신은 이미 십자가에서 박살이 났습니다. 정사와 권세가 다 해제돼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는 우는 사자가 아니라 이제 쫓겨가는 새앙쥐인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우리는 쫓고 또 쫓아서 하늘나라를 확대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종교의 의식과 형식도 이젠 분명해 졌었습니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이나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나 이런 것을 지켜야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은 이제는 아닙니다. 이런 것은 다 옛날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앞에서 그림자는 다 벗어 제껴 버렸었습니다. 비늘 없는 음식만 먹어야지 비늘 있는 생선을 먹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니 그렇지 않으면 새김질하는 동물이나 쪽발이 갈라진 것 먹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부정하다던지 그렇지 않으면 밖에 나가서 들어올 때마다 손을 씻어야 하나님께 사랑 받지 손안씻으면 사랑 받지 못한다던지 혹은 오직 토요일 날만 예배를 드려야 구원을 받지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던지 이러한 모든 종교적인 의식과 형식은 그림자로서 이제는 사라져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그것 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신앙이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오직 예수와 나와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젠 그림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본체와의 관계에서 예수님이 내 구주 되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갈 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새로운 세계를 소유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인간이 되었으며 희망찬 미래를 향해서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예수와 함께 이 땅에서 승리하고 영원한 천국에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이문에선 정사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와 권사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행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치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일 의 그림자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사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셨은즉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없으며 예수그리스도보다 더 보배가 없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예수 믿게 된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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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십자가의 위대한 승리
by 삶의언어 posted Aug 19, 2024 Views 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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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전도/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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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7-04-26 |
오늘의 성구 | 골로새서 2장 12절로 17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DnckT-hIaxk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