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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by 삶의언어 posted Oct 07, 2024 Views 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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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믿음/순종
예배드린 날 1987-05-31
오늘의 성구 요한복음 11장 17절로 4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BhNOXWqdOC8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한 오리쯤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빈민 군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바로 베다니로 밀려와서 그 곳에서 살아갑니다. 지금도 베다니는 예루살렘 근교에 있는 빈민 군입니다. 하물며 예수님 당시에 그곳에는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예수님께서 오시면 항상 들리던 주님이 사랑하는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 삼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조실부모하고 그래서 어려운 가운데 빈민 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형제 자매를 무척이나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들도 예수님께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고 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불행이라는 것은 예고가 없이 다가옵니다. 아무리 우리가 모든 것이 편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언제 불행의 돌풍이 다가올지 모릅니다. 이 가정에 갑자기 불행의 돌풍이 다가왔습니다.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 누이들이 아무리 힘을 써서 돌봤지만 그 병은 차도가 없습니다. 의사들을 불러다가 보였지만 차도가 없습니다. 의사들마다 고개를 흔들고 나가 버립니다. 이제 잘못하면 운명이 정각에 달렸습니다. 그러자 마르다와 마리아는 신속히 저 요단강 건너편에 계신 예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그곳에 사람을 보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자 나사로가 병이 들었으니 빨리 와서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도보로 걸어서 요단강까지 가는데 하루가 걸리고 돌아오는데 하루가 걸리니 이틀이 걸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소식을 듣고 난 다음에 이틀을 거기에서 거하시고 난 다음 그곳에 와보니 벌써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동구밖에 오시자 말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다는 그 자리에 일어나서 예수님께 뛰어나갔습니다. 그는 울부짖으면서 머리칼을 바람에 휘날리며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허둥지둥 예수님 앞에 뛰어나갔습니다. 너무나 감정이 격한지라 그는 그리스도 앞에서 그냥 엎드려 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그는 주님께 몸부림을 치고 말했습니다. 주여! 나흘 전에 이곳에 오셨으면 우리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겠나이다. 이 말에 예수님께서는 깊은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자리에 와 계시는데 지금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와 계시는데 여기에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시고 나흘 전에 이곳에 왔으면 우리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마르다의 생각 속에는 이미 죽은 오라버니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손 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 손 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자를 있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나흘로 퇴보시키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신앙고백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 합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말을 하면 주님께서 역사 하실 수 없습니다. 여기에 마르다가 이야기하는 예수님은 나흘 전에 예수님. 과거의 예수님이지 현재의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재 마르다 앞에 예수님이 서 계시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은 마르다의 입에서 나오는 신앙고백은 과거의 예수를 인정하고 현재의 예수는 싹 무시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무시당한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자리에서 기적을 행할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교회도 이와 같은 룰을 얼마나 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수많은 신학자들이 주의 종들이 그리고 신앙인들이 무어라고 말합니까. 기적의 신은 지나갔다.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에는 기적을 행하였으나 오늘날에는 행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마치 마르다와 같이 나흘전의 예수님은 인정하나 오늘의 예수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지고 일점 일획도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항상 너와 있으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에 우리 가운데 와 계시는 것입니다. 그는 땅과 하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는 어제 예수님이 아니라 지금 살아서 여러분과 내 가운데서 지금 기적을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죄를 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성령 충만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지금 귀신에서 놓여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여러분을 고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저주와 가난과 절망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여러분과 나를 구출하사 천국에 보내시려고 기다리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지금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성경에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도 역시 나흘 전에 예수님이 이곳에 계셨더라면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었더라면 나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신앙고백을 합니까. 지금 여러분과 나는 그고 작은 나사로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개인과 가정생활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우리 곁에 찾아왔지만 우리 신앙고백은 나흘 전의 신앙고백을 하지 않고 있습니까. 과거의 예수그리스도를 신앙고백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마르다의 그와 같은 말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위로의 말 한마디를 해 주실 줄 알고 기다렸는데 예수님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나흘 전에 예수님 과거로 밀어버린 예수님께서 현재의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말씀도 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예수를 고백하고 있는 이상 현재의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이 간섭할 수 없습니다. 마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눈물 흘린 눈으로 예수님을 쳐다보니 예수님의 얼굴이 실망의 눈빛으로 영역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잘못 말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시로 그는 신앙고백을 고쳤습니다. 주님이시여 지금이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줄 아나이다. 그는 올바른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나흘 전에 예수님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면은 주께서 대답하십니다. 주님이 즉시로 그 말을 듣고 대답하시기를 "네 오라버니가 지금 살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지금 예수님을 시인하고 고백해 드리면 즉시로 그 신앙고백을 따라서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지금의 기적을 믿기가 참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이성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감각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경험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 사람들은 지금 기적을 믿는다고 하면은 광신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지금 네 오라버니가 살리라 하니까 이것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네 우리 오라버니가 부활의 날에 살아날 줄 믿습니다. " 예수님은 지금 살리라고 했는데 마르다가 그 말을 견딜 수가 없어서 예수님을 미래의 예수님으로 밀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부활의 날 주께서 강림하실 그 날에 우리 오라버니가 살지 지금은 못 살아요. 그런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기적을 그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또 다시 미래의 예수를 고백하므로 예수님을 미래로 밀어 제켜버렸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시지만 우리 사람들은 신앙고백을 통하여 과거의 예수로 밀어 제켜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미래의 예수로 밀어 제켜버리고 현재에는 공백상태의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슬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에는 예수님이 없습니다. 죄는 그래도 있는데 마귀는 그대로 있는데 질병은 그대로 있는데 저주는 그대로 있는데 죽음은 그대로 있는데 옛날과 다름없이 사람들은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받고 있는데 지금 예수님은 없습니다. 과거에는 있었습니다. 미래에는 있습니다. 과거의 하나님께서는 침이 마르게 말합니다. 과거에는 홍해수도 가르고 쓴 물도 달게 하시고 바위에도 물이 나오게 하시고 맛나도 주시고 메추라기도 주시고 요단강도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졌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합니다. 미래에 주께서 강림하실 그 날에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살아있는 우리들이 다 변화되어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고하는 것이나 앓은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영원한 세계에서 살 것에 대하여 입에 침이 마르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예수님은 어디에 갔습니다. 현재의 예수님은 어디에 갔어요. 여러분은 현재의 예수님은 어디에 모시고 있습니까. 여러분 현재 여러분의 문제 속에서 예수님이 와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과연 오늘 기적을 믿고 사람들 앞에서 광신주의라고 말을 들을지라도 믿음으로 담대하게 일어날 수 있나요. 마르다는 그 기적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죽은 오라버니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와 계시는데 마르다는 과거의 예수님을 입으로 고백하고 현재의 예수님이 네 오라버니를 살리겠다고 말을 하니까 그 예수님을 밀어서 미래로 제켜버립니다. 부활에 날에 살아날 것이라고 미래의 예수로 제켜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강압하여 현재 예수로 인정하기를 요구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마르다여 내가 지금 곧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장차 부활의 날까지 기다릴 필요가 어디 있느냐. 지금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니 그러므로 네 오라버니가 지금 산다. 그는 그 말에 동문서답을 했습니다. 예 주는 그리스도시요.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인줄 내가 믿나이다. 그는 보기 좋게 낙제해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기적을 행하지 않는 이유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고백이 틀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죄사함의 신앙만 고백하면 주님은 죄만 용서합니다. 성령충만의 신앙을 고백하면 주께서 성령 세례도 주십니다. 병 고치는 신앙을 고백하면 주께서 오늘날도 병을 고칩니다. 오늘날도 죄를 제하시고 축복을 해주시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면 그리스도께서 오늘날도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보내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면 우리를 천국으로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입술에 말로 우리가 묶였으며 입술은 말로 사로잡힌바 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 메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체에 있습니다. 이러므로 신앙고백이 바로 예수님께서 타고 오는 수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를 통해서 역사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현재를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과거에는 계셨고 미래에는 계시지만 현재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재 내가 여기있다. 너희 무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여기 있다고 해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했습니다. 네 동생 마리아를 불러오라. 마르다는 뛰어가서 울고 있는 마리에게 가서 마리아야. 예수님께서 너를 찾으신다. 마리아는 항상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야말로 현재 살아 계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으시고 인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져오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리아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한참만에 마리아는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은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야말로 주여 일어나서 갑시다. 우리 오라버니 무덤에 가서 우리 오라버니를 지금 살려주시옵소서. 그렇게 말할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리아가 뛰어와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고 울더니만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들어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주여 나흘 전에 여기에 계셨더라면 우리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절망적인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현재의 예수는 마리아에게도 없습니다. 나흘 전에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보고 말했습니다. 오라버니를 어디에 두었느냐. 가보자. 그래서 가는데 마리아와 마르다가 나흘 동안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아니하여서 머리는 산발이고 얼굴은 초췌하고 옷은 구겨지고 흐느껴 가는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성경말씀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시고 주님께서 우셨다고 말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통분이 느껴지셨습니까. 분명히 예수님이 살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이란 과거의 예수 미래의 예수밖엔 모르고 현재 기적을 해하시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으므로 마음속에 통분히 여기셨습니다. 현재에 무시당한 그 예수께서 마음속에 통분히 여기시며 또 민망히 여기신 것은 문제에 짓눌려서 비극적인 인간이 된 것을 보고 또 믿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면서 장님의 눈을 뜨게 한 예수께서 나사로를 죽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느냐. 희롱을 당하게 한 것을 보고 주님께서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주께서 울었습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주님께서 수많은 교회 문앞에서 울고 계십니다. 수많은 성도의 집에서 울고 계십니다. 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문제를 해결 해 주러왔건만 여러분께서 문을 열지 않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는데 주 예수 대문밖에 기다렸으나 단단히 잠겨두니 못 들어오시네. 왜 우리는 과거의 예수는 인정하고 미래의 예수는 인정하나 현재에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를 믿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실천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인정을 못 받으므로 통분히 여기시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비난당하니 주님께서 저들을 보고 민망히 여기시사 주께서 우시는 것입니다. 얼마 동안 예수님을 울려 놓겠습니까. 얼마 동안 예수께서 여러분의 대문 밖에서 울고 서 계시도록 여러분은 만들어 놓겠습니까. 주님께서 이제 무덤가에 왔습니다. 여기에 마리아와 마르다가 서있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서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현재의 예수님을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마르다여 무덤의 돌을 옮겨 놓아라.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무덤의 돌을 옮겨 놓아라. 이것은 지금 살아 계신 주님을 믿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낭패에 처했습니다. 그는 당황하는 얼굴로 그리스도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주위에 있는 유대인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단호합니다. 예수님은 얼굴을 상기해서 마르다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마르다가 유대인들을 바라봅니다. 마르다야 어찌 감히 돌을 옮겨 놓겠는가. 그러면 온 동네 사람들이 너를 광신주의자라고 할 것이다. 너희 오라버니가 죽어 하루 이틀도 아닌 나흘이 되었는데 그 속에서 썩었는데 돌을 옮겨 놓다니 그런 것은 광신이다. 마르다여 광신자가 되겠는가. 그는 샌드위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비평소리를 들을 것이냐. 그래서 그는 얼굴을 찌푸리고 울음 섞인 음성으로 예수께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 오라버니가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서 지금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그는 끝까지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인정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랬지요. 미래에는 그렇게 하겠지요. 지금은 안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아주 얼굴에 불빛이 튀어나옵니다. 주님께서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주님 얼굴의 근육이 긴장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르다를 무섭게 쏘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여. 내가 네게 말하기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믿지 아니하면 오라버니는 썩어버린다. 네가 믿으면 내가 기적을 행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지금 그 돌문을 옮겨 놓아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신앙의 고백과 실천 위에서 기적을 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가만히 앉아있는데 주님 스스로 나와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광야에 나갔을 때 남자만 오천명 부녀자 기 만명이 있었을 때 주님께서 빌립보고 이 사람들에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죠. 여러분 주님께서 직접 그냥 다 먹이시지 무엇 때문에 빌립보고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까. 빌립은 앞에서 말하기를 주여 광야요. 이백데리온 이상의 돈이 필요한데 돈도 없고 떡살 돈도 없고 떡살 곳도 없으니 먹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주님은 먹일 수 있다는 신앙고백과 그 행동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있어야 역사하십니다. 믿음의 기적을 심어야 주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안드레가 어린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왔습니다. 그것은 안드레는 예수님께서 먹일 수 있다는 것을 믿고서 신앙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는 그런 믿음의 행위를 가져오니까 주께서 그 오병이어와 안드레의 믿음을 통해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그를 축복하시매 그 많은 사람이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여러분께서 그냥 교회 왔다 갔다 하면 주님께서 돌보와 주겠지 하면 그것은 오해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알고 지금 믿고 여러분께서 믿음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주의 말씀대로 여러분께서 담대하게 실천하면 그 믿음의 실천을 통해서 주님께서 오늘날도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 무슨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제 세상사람들에게 광신자가 되고 온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할지라도 과거의 예수도 아니요. 미래의 예수도 아니요. 지금 예수그리스도인 것을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이성이 반발해도 감각이 반발해도 믿음으로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나의 의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 무덤의 돌에 매달려서 그들은 무덤의 돌을 밀어냅니다. 그것이 힘 안들 리가 없습니다. 사흘을 굶고 울었으니 어떻게 힘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무덤의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행위로 옮겨 놓지 않으면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돌을 옮겨 놓는데 예수께서 와서 같이 밀어주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먼저 행위를 해야 합니다. 사람이 할 일을 해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회에 와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이요. 사람이 십일조를 내어야 하나님께서 물질로 축복해 주실 것이요. 사람이 전도해야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할 일을 하나님이 해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할 일을 여러분이 믿음으로 할 때 주님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무덤의 돌을 옮겨 놓는 것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지 아니하였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있는 힘을 다하여 그 돌을 밀고 밀어서 결국에 그 돌문이 움직여서 열리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열린 무덤 문에서 섞은 냄새가 납니다. 모든 사람이 코를 붙잡았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도 손으로 코를 움켜잡았습니다. 섞은 냄새가 납니다. 이제 사람으로써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돌을 옮겨 놓는 일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기적을 기대할 수밖엔 없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기적을 믿는 종교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기적을 믿지 아니하면 살아 계신 그리스도는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적의 출발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기적을 제외해 버리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증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할 일을 행하고 난 다음에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게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비켜섰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그 무덤 앞에 서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예수께서 텅빈 무덤 안을 들어다 보시고 난 다음 주님께 고개를 들어 감사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항상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도 기도를 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은 내가 주위에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깨닫게 하려함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주님께서 무덤을 들어다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와라. 그러자 즉시로 썩은 냄새가 싹 그치고 오히려 그곳에서 향기가 넘쳐 나왔습니다. 그러자 사람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나사로가 나옵니다. 머리에는 죽음의 수건을 쓰고 온 몸은 수위로 동여 묶은 채 그는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보셨습니다. 거기에는 마르다와 마리아도 보았습니다. 그 뒤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들이 믿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여러분께서 과거의 예수가 아니요. 미래의 예수가 아니요. 지금 살아서 역사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대로 전할 때 여러분은 영광을 보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나사로의 문제는 해결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죽은 가정이 살아날 것입니다. 죽은 건강이 살아날 것입니다. 죽은 사업체가 살아날 것입니다. 절망은 소망으로 어둠은 빛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변화되고 말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난 다음 그로 하여금 수위를 다 벗겨서 자유롭게 다니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묶여있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오랜 세월 동안 죄악의 무덤 속에 살았습니다. 여러분과 나도 한때 죄악의 무덤 속에 살았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었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전도하여 돌문을 밀어 제켜주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잠자는 자여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라. 하나님께서 너를 살리시리라 하신 대로 여러분과 나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누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고 누가 우리의 돌문을 밀어 열어 주셨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여러분과 나를 살려서 오늘 예수 믿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나온 다음에도 죽음의 수위를 몸에 칭칭 감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살았으면 죽음의 수위를 벗어버리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어도 아직 옛 습관이 죄악의 수위를 몸에 감고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무능력의 수위를 감고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예수 믿고 나왔으매도 아직 질병의 수위를 몸에 감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저주와 가난과 낭패와 실망의 수위를 몸에 감고 있습니다. 절망을 감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저를 벗겨서 자유롭게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믿고 난 다음에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고서 남에게 빌려 줄지라도 빌리지 않는 그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옛날의 죄악의 세상에서 영적으로 죽었을 때 칭칭 감아놓은 저주의 그 수위들을 주님께서 다 벗어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늘날 교회에게 명령합니다. 저들에게 가서 수위를 벗겨서 자유케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죄악에서 살아나와 교회에 출석하지만 수위를 온 몸에 칭칭 감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교회에서는 죄악에서 살아났으니 만족하라고 합니다. 수위를 벗겨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수위를 벗겨 줘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목사들의 기도와 메시지를 통해서 그 몸에 감은 죄악의 수위를 무능력의 수위를 질병의 수위를 저주의 수위를 죽음의 수위를 벗겨 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내가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자유를 얻어서 일어나 나아가 천하 만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데 협조하고 또 직접 나가서 전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살아나셨습니다. 슬픔은 변화여 그 가정에 기쁨이 되었습니다. 절망은 찬란한 광명이 되었습니다. 눈물은 웃음이 되었습니다. 고통은 기쁨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오라버니 나사로를 껴안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하늘에 사무쳤습니까. 이런 것이 바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함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기쁨을 여러분에게 드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반드시 과거의 예수님이 아니요. 미래의 예수님이 아니요. 지금 살아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믿음의 실천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아무리 입으로 주여 주여 해도 내가 믿음으로 용기 있게 모험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 우리는 모든 세상사람이 보는 앞에서 주님이 보는 앞에서 불가능의 무덤 문을 옮겨 놓으십니다. 우리의 불 신앙의 무덤 문을 옮겨 놓으십시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십시다. 우리는 14회 세계선교대회를 열었습니다. 왜 선교대회를 열었나요. 세계 오십억의 인구가 사는데 그 중에 사십억이 죄악의 무덤가운데 들어있습니다. 그들은 썩은 냄새가 납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 영혼은 영원히 지옥에 갑니다. 누가 가서 그 돌문을 옮겨 놓아야 합니다. 누가 이 돌문을 옮겨 놓을까요. 한때 여러분과 나의 영적으로 죽은 무덤의 돌문을 옮겨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이제 살아있는 우리들이 세계 사십억 인구의 영적인 죽음의 무덤에 돌문을 옮기러 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못 가면 선교사를 보내야 됩니다. 수많은 우리 선교사들이 세계 각지에 나가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가서 예수를 전도하므로 그 돌문을 옮겨 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직접 가지 못하지만 이러한 돌문을 옮겨가는 우리 선교사들을 뒤에서 기도로 밀어주고 헌금을 드려서 자원을 가지고 밀어줘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을 우리가 해야 주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전도하여 죽음에 돌문을 옮겨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대회로 모인 것은 이 돌문을 옮겨 놓기 위해서 선교사를 파견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드리고 그들을 위해서 물질로 뒤를 밀어주기 위해서 선교대회를 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말합니다. 20세기의 마리아여 마르다여 내가 믿고 돌문을 옮겨 놓으면 하나님의 기적을 보리라고 말씀하지 않았느냐. 여러분 온 세계가 구원받기 원하면 아멘하십시다. 온 천하가 구원받기 원하시면 아멘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돌문을 옮겨 놓아야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옮겨 놓아야 해요. 우리가 물질을 통해서 옮겨 놓아야 됩니다. 우리 대표자 선교사들을 보내서 돌문을 옮겨놓아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세계를 구원하는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원하여 십자가에 올라가셨습니다. 우리의 죄, 추악, 저주, 절망, 죽음을 친히 짊어지시고 몸 찢고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내 아버지시여 우리가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대신하여 주었건만 너는 날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고 주께서 말씀하실 때 하나님이여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사옵나이까.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주님께 값없이 구원도 받았고 성령의 은혜도 받았고 축복도 받았고 또 받고 있습니다. 장차는 말로 형원할 수 없는 천국의 선물로 받게 되어있습니다. 아버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도 마리아와 마르다처럼 무덤의 문 앞에 절망의 돌을 옮겨 놓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살아있는 이상 선교사들을 보내든지 우리가 직접 가든지 기도를 하든지 물질을 보내든지 이렇게 해서 사 십억 인구의 죽음 무덤의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저들을 살리는데 한 역할을 담당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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