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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믿음의 시련

by 삶의언어 posted Nov 26, 2024 Views 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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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고난
예배드린 날 1990-03-25
오늘의 성구 야고보서 1장 1절로 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YRUOisz8TX4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믿음의 시련" 이와 같
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학창시절을 기억해 볼 때 가장 힘들고 괴
로웠던 것은 시험을 볼 때였습니다. 시험을 볼 때
마다 빨리 학교를 졸업하고 시험 보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사무친 것
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다고 해서 시험을 치지 않는다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의 매일매일의 생활은 우리의 능력
을 테스트 당하는 격렬한 생존 경쟁 투쟁에서 능력
있는 자가 잘 살고 능력이 없는 자가 고난을 당하
는 이러한 끝없는 시험의 처소에서 우리는 살고 있
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한 후에는 이제 이런 시험이 없이 살 수 있다
고 하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믿음의 시련이라는 시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
리가 믿음이 있노라면 그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께
로부터 시련을 통과하게 되므로 시험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
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화를 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은 반드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느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저가 반드시 계
신 것과 저를 간절히 찾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
은 시련을 당해서 그 시험을 합격하지 않고는 진짜
인지 가짜인지 그것을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
님께 인정받은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
은 반드시 불같은 시련을 통해야 그것이 진실한 믿
음인 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
에 대해서 우리 한번 알아보십시다.

첫째로,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성경 히브
리서 11장 1절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이 실상이란 헬라 원어는 '휘포스타시스'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휘포스타시스'라는 것은 두 단
어로 내려져 있는데 하나는 '휘포'이고 다른 하나
는 '히스테미'입니다. 실상이란 말은 이 두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휘포'란 말은 '밑에'라는 말이요.
'히스테미'는 '바친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받
침대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을 얻어놓은
받침대이다. 여러분 우리가 여러 가지 받침대를 만
듭니다. 꽃의 화분을 올려놓기 위해서 받침대를 만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올려놓기 위해서 받
침대를 만들어서 그 위에 물건을 올려놓기도 합니
다. 연약한 받침대를 만들어서 무거운 물건을 올려
놓으면 받침대가 흔들흔들 하다가 부러져버리고 마
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에 올려놓은 것까지 다 박
살이 나고 맙니다. 그러므로 받침대 위에 물건을
올려놓기 전에 반드시 튼튼한 받침대인지 아닌지를
시험을 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받침대를 흔
들어 보기도 하고 눌려보기도 하고 받침대에 힘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고 난 다음에 거기에 해당하
는 무거운 짐을 올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받침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올려놓은 받침대가 바로 믿음인데 하
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기 전에 받침대가 되는
우리 믿음을 반드시 흔들어 보고 눌러보고 시험을
해 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 보지 않
는다면 하나님은 무책임한 하나님이 되시고 마는
것입니다. 진짜로 이 사람에게 이만한 은혜를 줘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만한 복을 주어도 감당할 수
있을까.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보시고 눌러보시고 그리고 시험을
통해서 보시고 이 받침대가 틀림없다고 보면 그 다
음에야 비로소 그 믿음에 하나님은 응답을 해 주시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반드시 시련의 길을 통해야 하
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
거라고 했으니 여러분 증거에는 거짓 증거도 있고
참된 증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진짜
믿음이냐. 가짜 믿음이냐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 증거를 반드시 시험을 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
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요사이 가짜 증거가
아주 많습니다. 그 가짜 증거를 믿고 일을 했다가
는 큰일납니다. 그러므로 믿음도 가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험을 쳐봐야 하는 것
입니다. 시험을 쳐보면 그 속에 있는 것들이 드려
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반드
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시험을 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믿음이 있노라 하고 조금도
아무런 시련을 겪지 않았다면 그 믿음은 가짜 믿음
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
전히 기뻐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시험해 보고 인정한 다음 복을 주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
에 시련이 다가오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아예 여러
분을 무시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무시해 버린
사람은 아무런 은총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에게 시련이 다가온다는 것은 무시당하
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시련을
통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굳건한 믿음에 서 있으면
한 기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 믿음이 인정을 받게
되고 그 인정된 믿음 위에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종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모
세가 죽고 난 다음 삼백 만 이스라엘 백성을 인수
인계해서 여호수아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으로 들어가게 된 과정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들
이 요단강을 건너게 될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
게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제사장들이 법궤를 짊어
지고 백성들이 뒤를 따르면서 요단강으로 들어가면
요단강이 갈라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맥추절
기에는 요단 강물이 넘실거립니다. 아주 많이 넘쳐
흐릅니다. 그래 이스라엘 삼백 만 백성이 제사장들
을 따라서 요단강을 향해서 긴 행렬을 이루면서 갑
니다. 요단강에는 지금 아무런 배도 없고 그 많은
백성들이 건너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법궤를 짊어지고 요단강까지 왔습니다.
요단강에 와서 서있는데 요단강이 갈라지지 않습니
다. 분명히 여호수아가 말하기를 너희가 법궤를 짊
어지고 요단강에 가면 요단강이 갈라질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반드시 받았는데 제사장들
이 법궤를 짊어지고 요단강에 와서 머뭇거리는데도
요단강이 갈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여호
수아를 쳐다보고 어떻게 할까요. 그런 물음을 합니
다. 여호수아는 그냥 걸어 들어가라. 물이 넘실거리
는데 법궤를 짊어지고 들어가다가 빠져죽으면 어떻
게 합니까. 그런데도 걸어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래
서 그들은 법궤를 짊어지고 요단강에 걸어가서 물
이 신발에 잠겼습니다. 그래도 요단강은 갈라지지
않아요. 어 이것 봐라 요단강이 갈라진다고 했는데
이미 물이 신발에 닿았는데 안 갈라진다. 울상을
하고서 여호수아를 쳐다봅니다. 여호수아는 계속해
서 들어가라. 이제 신발이 물에 완전히 잠겼습니다.
그래도 요단강은 여전히 흐르고 갈라지지 않습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은 갈라진다고
했는데 실제로 지금 신발이 물에 잠겼는데도 안 갈
라집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걸어 들어가라고 합
니다. 이 제사장들은 법궤를 짊어지고 자 여호수아
를 순종할 것이냐. 순종하지 말아야 할 것이냐. 굉
장한 기로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각오를
내렸습니다. 에라. 물에 빠져 죽더라도 순종하며 빠
져 죽자. 그래서 걸어 들어가서 물이 발목까지 올
라오자 순식간에 요단강 물은 갈라지기 시작한 것
입니다. 요단강은 쉽게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갈라
진다는 분명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물이 발목에 올
라올 때까지 믿음을 실천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말씀 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 믿음이 확실하다는 증거가 이루어지자 하
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행함
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반
드시 믿었으면 그 믿음대로 행해야 되고 행할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들이 여리고까지 왔었을 때 하
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리고까지 와서 여리고
성을 둘러싸고 칠일간 돌면 여리고 성이 무너질 것
이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굉장한 시련입니다. 그들
이 와서 첫째 날은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여리고성 위에는 여리고의 군
사들과 경찰들이 잔뜩 입장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
는데 가만히 보니 아주 옷도 더럽게 입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장도 허술하게 하고 와서 여리고성을
한 바퀴 돌고 난 다음에 진으로 돌아가서 자니 이
튿날 와서 여리고성을 돌고 삼일째 됩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은 금하나 나지 않습니다. 아무런 무너질
징조가 없습니다. 나흘, 닷새, 엿새, 그들에게 정신
적으로 굉장한 시련이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가 말
을 하기는 쉽지만 여리고성이 무너질 것 같으면 벌
써 엿새동안 돌았으면 적어도 성에 금이라도 가고
뭐 흔들흔들 하던지 갈라질 기미가 보여야 할 것인
데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그
들의 마음속에 틀림없이 폭풍우가 불어올 것입니다.
진짜로 여리고성이 무너질 것이냐. 안 무너질 것이
냐. 헛된 수고를 한 것이 아닌가. 제 칠일째는 벌써
아침부터 시작해서 한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다섯 바퀴, 여섯 바퀴 돕니다. 그런데 아무런
증거도 없습니다. 세상에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
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헛수고하는 것이 아니냐.
일곱 바퀴째 돌아섰습니다. 아무 증거도 없습니다.
그럴 때 여호수아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었으니 이 성은 무너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외쳐
라. 하나님께 부르짖어 외쳐라. 백성들이 일시에 외
치자 여리고성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무너져 내리고
만 것입니다. 여기에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리
고성을 그냥 무너지게 하면 좋을 것인데 무엇 때문
에 엿새 동안 돌고 이레째는 일곱바퀴를 돌게 한
것입니까. 이것은 과연 너희가 내 말을 믿느냐. 믿
지 않느냐. 시험을 해 보는 것입니다. 진짜로 믿으
면 그 엿새 동안 인내하고 돌고 이레째는 일곱 바
퀴를 돌 것이요.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
니하면 그들은 중도에서 그만 두고 말 것입니다.
끝까지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하나님께서 시험
을 하시고 난 다음 시험에 합격하자 하나님은 위대
한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시험을 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성경에 있는 기생 라합 집에서
한번 보십시다. 기생 라합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에 학자들도 많고 돈 많
은 사람들도 많고 능력 있는 사람도 많았지만 하나
님을 믿는 사람은 이 비천한 기생이었습니다. 여호
수아가 정탐꾼을 보냈을 때 이 기생 라합의 집에
왔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정탐꾼을 이용해서
허다한 사람 내버려 놓고 기생 라합의 집에 왔습니
다. 이 기생은 자기의 몸을 파고 웃음을 파는 사람
이었지만 그러나 그 마음속에 신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속에 믿음이 있으면 기생이라도 청결
하게 만들어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
리스도의 혈통에 바로 기생 라합이 들어와 있습니
다. 훗날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하고 결혼해서
결국에는 다윗의 조상이 되고 그리스도의 혈통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죄인이
얼마나 큰 죄인이냐를 분별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
속에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주님께서 보십니다.
믿음만 있으면 어떤 죄인이라도 하나님께서는 말씀
과 성령으로 거룩하게 만들어 놓을 수가 있는 것입
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기생 라합의 집으로 이 정
탐꾼을 인도했고 이 기생 라합은 이 정탐꾼을 무사
히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럴 때 정탐꾼하고 약
속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들어와서 여리고를 무
너뜨릴 때 기생 라합과 그 가족이 그 집안에 들어
있어 밖에 나가지 않는 이상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
켜줄 것을 보증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담벼락에
는 빨간 실을 내려놓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말하는 것입니다. 온 천
지가 변화되고 하나님이 심판할 때도 예수 그리스
도의 핏줄을 잡고 있으면 그와 그 집이 구원을 얻
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 것은 기생 라합의
집에서 하나님이 상징적으로 잘 보여 주신 것입니
다. 그래서 기생 라합은 자기의 집이 성벽 위에 있
었기 때문에 벽 창문가로 빨간 실을 내려놓았습니
다. 그리고는 온 가족들을 다 불러모았습니다. 기생
라합은 기생 사업을 잠시 중지하고 나아가서 아버
지 어머니 오라버니 언니 동생 할 것 없이 온 가족
들을 다 자기 집에 불러모았습니다. 곧장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서 여리고는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람들이 이 집에 모여있으면 반드시 이
집을 지켜주기로 약속을 했다. 우리 집으로 모여라.
그래서 온 일가 친척들을 다 집으로 모아 놓았습니
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와서 하루를 돌아도
여리고성이 무너지지 아니하고 이틀을 돌아도 여리
고성이 무너지지 않고 사흘 나흘 세월은 흘러가는
데 온 일가친척은 모두다 그 집에 모여서 창가로
혹시 성이 무너지는가 바라보니 어림도 없습니다.
이야말로 정말 정신적인 고통에 처해 있었습니다.
아마 나흘 닷새 될 때는 온 시구들이 전체가 집으
로 돌아가야 겠다. 집에 돼지도 먹이를 줘야되겠고
닭도 모이를 줘야되겠고 집을 그냥 내버려 놓고 왔
는데 이게 원말이냐 우리는 돌아가겠다. 여리고성
이 무너지기는 뭐가 무너지느냐. 저 백성들이 성을
돈다고 무너질 턱이 있느냐. 아마 온 가족 전체가
일어나서 기생 라합에게 대모를 했을 것입니다. 그
러나 기생 라합은 굳은 결심을 가지고 그는 자기
문가에 서서 막습니다. 아니요. 이 성은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너
지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늘
여섯번째 돌고도 성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더라도
이 성은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
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기생 라합 혼자 굳
은 말씀의 믿음을 가지고서 온 가족을 구원하기 위
해서 문간에 서서 그를 막았지만 나중에는 아마 가
족들이 분노하고 일어나서 기생 라합을 죽이려고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기생 라합은 말했을 것입니
다. 죽이고 싶으면 죽이십시오. 나를 짓밟고 나의
시체를 밟고서야 우리 집을 나갈 수 있지 못나갑니
다. 이 집에 들어온 이상 못 나갑니다. 왜냐. 이 집
에 있어야 구원을 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는 기
생 라합을 볼 때 큰 감동을 느낍니다. 기생 라합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가족이 다 구원을 받았습
니다.
여러분 기생도 자기 가족들을 생각하고 성이 무
너지기 전에 가족을 구하려고 전력을 다 기울였는
데 하물며 인간 세상 성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
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
두다 불타고 말 것입니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땅이 열렬한 불에 녹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믿는 자만이 오직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전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
분의 가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기생 라합은 비록
몸을 팔고 웃음을 파는 여자라고 해도 자기 가족들
을 사랑해서 그 위기 때 자기 집으로 불러 모아오
는 애정과 그 끈질긴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
러분 이제 세상이 멸망할 때가 다가왔는데 이제 예
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이 곧 우리 가까이 다가왔
는데 여러분의 부모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형제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
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이웃들은 어디에 있습니
까? 그들은 여러분 신앙의 집에 들어와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들이 방황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까? 그저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 왔다하는
말은 이것다 옛날부터 하는 말이다. 그리고 여러분
께서는 무관심하고 계십니까? 주께서 도적같이 올
것이라는 말을 여러분께서는 기억하십니까?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
늘로 좇아 순식간에 강림하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찬미한 자는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들이 다
변화되어 공중으로 다 올라 갈 것입니다. 그날은
순식간에 다가옵니다. 지금은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찌라도 멸망은 순식간에 옵니다. 여리고 성의 사
람들은 평안하다. 평안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
무리 주위를 돌아다녀도 우리의 군비는 강하고 우
리의 군대는 강하다. 절대로 이 성은 무너지지 않
는다. 벌써 엿새째 돌아도 진동하나 오지 않았고
성에 금하나 가지 않았다. 우리는 끄덕 없다. 편안
하다.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기생 라합의 집에 가
족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겠다
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러나 기생 라합은 결심하
고 가족들을 돌보았습니다. 절대로 못나갑니다. 이
성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
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말씀은 이루어진다.
말씀에 선다. 기생 라합의 믿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분이 기생이지만 그러나 말씀에
대한 믿음은 이 세상 누구도 견줄 수 없을 만한 믿
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엿새가 되고 이레째 들어
가서 여섯 바퀴를 이스라엘 백성이 돌 때는 기생
라합에게는 6년이 아니라 60년처럼 길어 보였을 것
입니다. 한 바퀴 돌아도 아무 일 없어..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나중에는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
했습니다. 그러자 일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고함을
치자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니 그렇게도 튼튼
하던 성벽, 그렇게도 조용하던 도시, 추호도 무너질
기미가 없던 것이 순간적으로 무너져 내리는데 기
생 라합의 집만 남아있고 그 주위는 다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물밀 듯이 와서 모든 사람들은 다
죽고 오직 기생 라합과 그 가족만 구원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얼마나 믿음에 시련을 겪게
된 것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네 번째로, 우리는 시련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시련을 당할 때 하
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굳세게 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이 믿을 수 있는 유일
한 이유란 하나님의 말씀밖엔 없는 것입니다. 말씀
이외에 여러분 무엇을 믿습니까? 여러분의 지식을
믿습니까. 여러분의 감정을 믿습니까. 여러분 환경
을 믿습니까. 우리의 지식이나 환경이나 감정은 시
시각각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저 하
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변해도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말씀밖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
스도도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할 것은 말씀밖엔 없
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
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그 말씀에 우리가 믿음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 이외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
는 아무런 보장도 없습니다. 말씀을 믿다가 죽더라
도 말씀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 이외에는
우리가 설 곳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사
람들이 말씀을 저 버리고 감정에 들뜨든지 흥분하
면 감정이 사라지고 나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많이 덥다
고 해서 변치 않고 많이 차다고 해서 변치 않습니
다. 경기가 좋다고 해서 말씀이 달라지는 것 아니
고 경기가 나쁘다고 해서 말씀이 달라지는 것 아닙
니다. 말씀은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분께서는 말씀의 중한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럴 때 아무리 시련이 다가
와도 여러분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시련이 다가올 때 여러분 쉬지 말고 기
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령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
의 능력은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됩니다. 내가 아무리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일이 되는 것 아니요, 인간의
기교를 통해서 수단과 방법을 다 한다고 해도 안됩
니다. 성령이 와서 붙들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붙잡아주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계는 기도의 세
계인 것입니다. 기도하면 성령 안에 들어가고 성령
이 오시면 우리에게 기도하게 합니다. 성령이 떠나
갔으면 기도하기 싫어집니다. 또 기도를 안하면 성
령께서 우리와 교통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과
기도는 절대적인 함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
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는 어느
때보다 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
문에 야고보서에 말하기를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
니다. 사람이 고난 당할 때 기도하지 않고 그냥 인
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우리는 시련
을 이기고 시험에 합격하고 믿음에 설 수 있게 되
는 것입니다.
그 다음 시련이 다가올 때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
워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환경은 우리에게 공포
를 가져다주기 위해서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듭니
다. 바로 베드로가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했지 않
습니까. 예수께서 분명히 오라고 했는데 그 말씀을
듣고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 파도치는 바다 위
를 베드로는 용감하게 걸어 나갔습니다. 말씀을 믿
고 갈 동안에는 그는 물위로 걸어가는 기적이 일어
났지만 순식간에 그는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았습니
다. 환경을 바라보고 그 마음속에 공포심이 들어왔
습니다. 말씀이 옮겨가고 그 가운데 공포가 들어오
자 물 속에 빠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조금 전에
걸어가던 그가 조금 후에는 물에 빠졌습니다. 바다
가 달라진 것도 아니고 바람과 파도가 달라진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의 마음속에 믿음이 달라진 것입
니다.

오늘날 여러분 마음속에 믿음이 운명을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환경을 바라보지 말
고 여러분은 말씀을 굳세게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
다. 그리고 시험과 환난을 통할 때 원망과 불평하
지 말고 용서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우리의 신앙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마귀
의 도구인 것입니다. 얼마 원망하지 아니하고 얼마
불평하지 아니하고서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신
앙은 전부다 다이나마이트로 폭파되고 마는 것입니
다. 그러기 때문에 시련을 당할수록 하나님께 감사
하고 찬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
게 오셔서 좋지 않은 것조차 좋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즉 그 뜻
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
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시험을 당할 때 원망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찬양하고 하면 여러분은 시련을
늘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더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아예 시련을 당하면 여러분께서 마지막 밧줄에서
눈을 감고 매어 달리는 것입니다. 끝까지 매어 달
리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다' 하는 에스더의
기도처럼 믿음으로 매어 달리면 승리는 우리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하나님
께서 그를 통하여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성령의
은총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작은 믿음에는 작은
시련, 큰 믿음에는 큰 시련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시련은 종국에 가서 위대한 승리를 가져오게 되
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시련
을 통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믿음 위에
하늘나라의 보화를 얹어 놓기를 원하시는 것입니
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은 각 사람에게 그 양대로 믿음을 주셨지만 그 믿
음은 반드시 그 시련을 통해서 확정이 되고 인정이
되고 그리고 그 불같은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 하나
님은 크나큰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
리 하나님 아버지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
을 당할 때 결코 뒤로 물러나지 말게 도와주시옵시
고, 낙심하지 말게 도와주시옵시고, 믿음을 포기하
지 말게 도와주시옵시고, 더욱 더 말씀 위에 서고
더욱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욱 열정을 다하여 하나
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끝까지 참아 승리하는 우
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
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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