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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용돈은 천원(?)

by 삶의언어 posted Dec 27, 2022 Views 0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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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용돈을 내가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천원씩 드리기로 했다.
올 2월초였다. 갑자기 아버지께서 소변을 못보신다는 연락이 왔다. 시골 조그마한 의원에서 응급처치로 소변을 빼내시고, 천안에 있는 병원에서 응급처치로 소변을 빼내시고, 천안에 있는 모 대학병원에 어렵게 병실을 얻어 2월 7일에 입원을 시켜드렸다. 입원하기 하루 전 날 천안에 살고 계시는 형님께서 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에 가려고 하는데, 아버지께서는 한사코 안가신다고 하셨단다. 그 이유야 시골에 사시다 보니 목욕인들 제대로 하셨을까 싶어, 창피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단다.
겨우겨우 설득을 시켜 목욕탕에 모시고 가는데 성공을 해서, 옷을 벗으시는데 아버지 고쟁이(속팬티) 속에서 똘똘 뭉쳐진 돈뭉치가 한웅큼 나왔단다. 형님께서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갖고 계시냐며 돈을 세어보니 자그마치 51만원이나 되더란다.
자식들이 조금씩 준 돈을 쓰지 않고 그렇게 모아 놓으신 거다. 나는 이 얘기를 듣고 코끝이 찡해옴을 느꼈다. 그렇게 궁핍하게 사시면서, 잡숩고 싶은 것을 못 잡숩고 쓰고 싶은 것 참아 가면서 언젠가를 위해서 돈을 모아 놓으셨으니 말이다.
입원 후 며칠 후에 결과가 나왔다. 전립선 비대증이라는, 의사 선생님말로는 연세가 너무 많아서(76세) 수술하기는 좀 부담스럽다고 한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방광에서 호스를 밖으로 연결해 소변을 빼내야 한단다.
우리 형제들은 모여서 상의를 했다.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수술을 할 것이냐 아니면 좀 불편하시더라도, 안전하게 오줌 주머니를 차고 평생을 사시게 할 것이냐, 여러번 상의 끝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2월 22일 아침 일찍 병실 문을 열으니 아버지께서는 긴장을 하셨는지 자꾸만 화장실에 가고 싶으시단다. 나오지도 않은 용변으로 몇 번인가를 왔다갔다 하다보니 수술시간이 다됐다.
우리는 수술 대기실에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불안 초조한 시간을 보내며 수술이 성공하기를 빌었다.
세 시간 후쯤 아버지께서 수술실에서 실려 나오셨다. 병실로 모시고 가서 보니 아버지께서는 수술이 끝난 안도감 때문인지 평온해 보이셨다. 2월 29일 드디어 퇴원하는 날이다. 수술결과가 좋아 한 이틀정도 빨리 퇴원하는 거다. 아침 일찍이 시골에 도착해서 차와 누님을 시골 집에 내려놨다.
청소도 하고 불도 지피고, 아버지 어머니를 맞을 준비를 하게 했다. 곧바로 천안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퇴원 수속을 끝내고 짐을 정리하면서 나는 아버지께 여쭈어 봤다.
"아버지 고쟁이 속에 감춰둔 돈 뭐에 쓰실려고 했어요?"
"뭐 … 돈이 있으면 든든해서지."
"얼만큼 있으면 든든한데요."
"글쎄 한 백만원쯤 있으면 좋지."
"알았어요. 제가 백만원 채워 드릴테니 그때까지만 사세요, 대신 제가 시골에 내려올 때마다 천원씩 드릴께요. 꼭 백만원 채우시고 돌아가세요."
우리는 모두 웃었다.
얼마만에 우리 식구 모두가 환하게 웃는건가...

여성시대 1996년 4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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