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 한 노인이 자기 마음에서 다른 마을을 향해 길을 가다가 도중에 반쯤 얼어죽어 가고 있는 뱀을 발견했다. 노인은 그때 문득, '자비는 모든 생물에 미친다.'라는 시귀(時句)를 떠 올렸다. 그는 뱀을 집어 올려 품 안에 넣어 따뜻하게 해 줬다. 뱀은 차츰 원기를 되찾았다. 이윽고 완전히 회복하여 제정신이 들자 뱀은 생명의 은인인 노인의 목을 칭칭 감고 죄어 죽이려고 들었다. 노인은 비명을 지르면서 말했다.
"괘씸한 놈! 넌 날 죽이려는 거냐? 내가 없었다면 넌 얼어서 죽을 뻔했다구. 자, 함께 재판관 앞으로 나가서 판결을 받자."
뱀은 대답했다.
"나도 찬성이다. 하지만 누가 우리들의 싸움을 판가름해 줄 수 있겠는가?"
노인은 말했다.
"우리들이 맨 처음에 만나는 자에게 부탁하기로 하자."
얼마 후, 그 길에 황소가 나타났다. 노인이 말을 걸었다.
"잠깐 기다려 주게."
그리고 나서, 어떤 일이 일어 났던가를 얘기했다. 뱀이 그 사나이에 한 마디 말을 꺼냈다.
"난 당연한 일을 했을 분이라구. 성서에도 분명히 '뱀과 인간 사이에 적의(敵意)를 심어 줘야겠다."라고 나와 있으니 말이야."
그러자 황소가 말했다.
"뱀이 옳다. 당신이 뱀에게 좋은 일을 해 줬다 하더라도, 뱀은 나쁜 직으로 보답해도 무방하다. 그것이 이 세상의 질서로 돼 있다. 내 주인이 내게 하는 짓도 전혀 다를 바 없다구. 난 주인을 위해 피땀을 흘리면서 일하고 온종일 밭을 간다. 그래도 식사때가 되면 주인 녀석은 가장 맛있는 것만 먹고 내게는 지푸라기밖에 주지 않아. 잠자리도 녀석은 침대인 데 반해, 난 뜰이나 땅바닥에서 그대로 자고 있는 형편이라구."
노인은 황소의 말에 화를 내면서 뱀과 함께 다시 걸어갔다. 얼마 후, 당나귀가 한 마리 다가왔다. 그래서 그는 당나귀에게 물어 봤으나 당나귀도 황소와 마찬가지고 뱀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 무렵, 이새의 아들 다윗이 유태 나라의 왕이었다. 그리하여 노인은 뱀과 함께 왕 앞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다윗도 노인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지 않았다. 다윗은 말했다.
"성서가 가르치고 있듯이, 옛날부터 뱀과 인간은 서로 적대 관계에 있다. 그에 대해서 나들 어떻게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노인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다윗 앞을 물러섰는데, 돌아갈 때 안뜰 우물가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서 있는 걸 봤다. 솔로몬은 그 무렵, 아직 귀여운 소년이었다. 그는 우물 둘레의 흙을 파는 작업을 감독하고 있었다. 아버지 다윗의 지팡이가 우물 속으로 떨어져 바닥에 꽂혀 버렸기 때문에 수면을 넓혀서 지팡이 끝이 물 위로 나오도록 하고 있었다. 이걸 보고 노인은 문득 생각했다.
'똑똑한 소년이군. 저 애더러 내 고민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해 봐야겠구나. 뱀보다도 내가 옳다고 말해 줄지도 모르겠으니까…….'
그래서 노인은 뱀이 자신에게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가를 얘기했다.
그러자 솔로몬이 말했다.
"당신은 그 싸움을 아버님께 판결을 내려 달라고 부탁했던가요?"
노인은 대답했다.
"그랬죠. 하지만 국왕께선 저의 힘이 돼 줄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함께 다시 한번 아버님한테 가 봅시다."
그리하여 다같이 다윗 앞으로 나섰다. 솔로몬은 우물에서 갓꺼내 올린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솔로몬은 왕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아버님은 이 노인과 뱀 사이의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셨습니까?"
다윗은 대답했다.
"이 노인은 성서의 말씀을 잊어 버리고 있었는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말했다.
"아버님, 이 사건은 제가 판결을 내리게 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아들이여, 네게 맡기겠노라."
솔로몬은 뱀을 향해 물었다.
"어찌하여 너는, 네게 온정을 베푼 사람을 해치려 하는가?"
뱀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이죠."
"그럼 너는 성서에 담겨 있는 가르침은 무엇이든 따르겠는가?"
"물론이죠."
"그렇다면, 너는 우선 노인의 몸에서 떨어져서 똑바로 서라. 율법에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느냐? '서로 다투는 두 사람은 판결을 받는 마당에서는 똑바로 서 있어야 하고.'라고"
"그대로 하겠습니다."
뱀이 노인을 감았던 몸을 풀어 주었다. 그러자 솔로몬은 노인을 향해 말했다.
"성서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는 그대 머리를 짓밟아 뭉개리라.'라는 말을 따라 여기 명령하는 대로해야 한다."
노인은 지팡이로 뱀을 때려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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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몰랐던 뱀의 최후
by 삶의언어 posted Dec 27, 2022 Views 0 Likes 0 Replies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