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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에의 순종 - 순명편(順命篇) 2

by 삶의언어 posted Dec 27, 2022 Views 0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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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오니 바람 일어 등왕각 보내 주고, 운이 가매 천복비를 우레 울려 부수도다.

[원문] 時來風送騰王閣이요 運退雷轟薦福碑라.
[------시래풍송등왕각이요 운퇴뢰굉천복비라.

[해설] 등왕각은 남창(南昌)에 있는 다락 이름이다. 당(唐) 고조(高祖)의 아들 원영(元영)이 홍주 자사(洪州刺史)로 부임해 이를 지었는데, 낙성하는 날에 마침 등왕으로 봉한다는 명령이 전달되었으므로 등왕각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홍주는 남창의 옛 이름이다.
이 등왕각은 매우 경치가 좋은 곳이나, 훗일 왕 발(王勃)이 쓴 <등왕각 서(등王閣序)>로 더욱 유명해졌는데,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훗일 이곳의 자사인 염 백서(閻伯嶼)가 등왕각을 중수하고, 9월 일을 기해 크게 잔치를 베풀고 제 사위 오 자장(吳子章)으로 하여금 글을 짓게 할 심산이었다. 이때 왕 발은 13세의 어린이로 7백 리밖에 있었는데, 신이 바람을 일으켜 그의 배를 하루 동안에 등왕각에 이르게 해 주었다. 그리하여 잔치에 참석해 고금의 명문으로 평가되는 <등왕각 서>를 지었다는 것이니, '대가 오니 바람이 등왕각으로 보내 주었다'는 것이 이를 가리킨다.
또 천복비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요주(饒州)의 천복사라는 절에 이 북해(李北海)가 글을 짓고 구양 순(歐陽詢)이 글씨를 쓴 비가 있었는데, 명필 구양 순의 필적이라 하여 매우 유명했다. 그래서 송대(宋代)의 한 선비는 천복비의 탁본을 여러 벌 해 오면 큰 돈이 굴러 들어와 궁색을 면할 것이라 하여, 재상 범 중엄(范仲淹)으로부터 노자를 얻어 가지고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천신 만고 끝에 도착했더니, 그 날 밤에 벼락이 떨어져 하필이면 그 비석을 깨 버리는 바람에 허사가 되었다 한다.
운이 좋을 때는 바람이 불어 7백 리의 먼 길을 하루에 가게 하는가 하면, 모처럼 가난을 면해 보려는 서생의 꿈을 이렇게 박살 내는 일도 있었다는 것이니, 이런 일이 지금이라 하여 없으란 법은 없겠지만, 인생의 모두가 이렇게 결정되어 있는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등王閣序'의 '등'자는 윈도우 기본 한자목록에 없습니다. 한글97의 확장 한자목록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한자명은 '물솟을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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